기사입력 2018.12.11.
10월 14일 서울 강서구의 PC방 아르바이트 직원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김성수(29)가 수사 과정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하고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사진
정신감정 결과 나오기도 전에 심신미약 감형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마감까지 119만 2,049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는 역대 최다 인원이 참여한 청원으로 기록됐다.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살인한 피의자가 우울증을 근거로 심신미약을 주장한 것이 2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분노케 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10월 22일 김성수를 공주치료감호소로 보내 정신감정을 받도록 했다. 그 결과 김성수는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성수를 검찰에 송치하며 11월 21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왜 피해자를 찔렀나’라는 중앙일보 취재진의 질문에 김성수는 “그때는 화가 나고 억울한 상태여서 피해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성수는 질문하는 중간마다 숨이 가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도 했다.
심신미약이 아니라는 정신감정 결과에 대해선 “제가 그런 부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의사가 말한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여론의 반응은?
포털 및 SNS 키워드 출현 빈도 그래프
청와대 국민 청원이 올라온 10월 17일부터 마감된 11월 16일까지 네이버와 다음(블로그, 카페),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주요 키워드 15개를 분석했다.
해당 포털 사이트 및 SNS에서 ‘심신미약’과 관련한 키워드로 ‘PC방’, ‘강서구’, ‘살인사건’이 가장 높은 출현빈도를 보였다. 세 키워드를 모으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라는 핵심 키워드가 완성된다. 이번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감형’, ‘주장’, ‘김성수’, ‘피의자’, ‘우울증’ 순으로 높은 빈도로 등장했다. 이는 피의자 김성수가 우울증 진단서로 감형을 주장했다는 맥락을 설명해준다. 한편, ‘조두순’은 주취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아 국민들의 공분을 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밖에 ‘국민청원’, ‘처벌’ 등이 검색됐다.
심신미약 VS 심신장애
심신미약은 형법 제10조에서 심신상실과 합쳐 심신장애로 불린다. 법률에서 심신장애(心神障礙)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심신장애(心身障礙)와 다른 의미다.
심신장애는 생물학적·의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법원이 의학적으로 정립된 정신장애에 기초해 피고인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하는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이 결여 또는 부족했는지를 규범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심신상실은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상태, 심신미약은 그 능력이 적은 상태를 뜻한다.
판례는 정신장애를 정신병, 지적장애, 비정상적 정신상태로 나누며 추가로 알코올의존성 정신질환을 포함하고 있다. 비정상적 정신상태는 증상의 정도가 심각해 병으로 볼 수 있는 정도에 이르거나, 다른 정신병 증상이 결합돼야 심신장애로 본다.
형법 제10조 내용 및 악용 사례
이런 조항이 생긴 이유는 범죄의 세 가지 요건 중 하나인 책임성 때문이다. 법은 이성적인 인간이 자유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심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사물을 구별하고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기에 행동에 따른 책임을 지기 어렵다고 보고, 그들에게 형법을 부과하지 않거나 줄여주는 것이다. 법에서는 이 조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인 사람들을 정상인과 동일하게 처벌할 수 없다.
심신장애는 법률상 감경요소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피고인 측에서 주장한다. 검사는 범죄수사와 공소를 담당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책임능력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법원은 범죄가 성립되지 않거나 형이 감면되는 이유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판단을 명시해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이 법에 대한 논란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지난 심신미약 판결들로 인해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공분한 것이다.
그동안 심신미약 감형 제도를 악용한 전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당시 검찰은 범죄가 잔혹하다며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범행 당시 조현병,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 외에 음주나 약물 중독으로 피의자 김성민이 2차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아 감형됐다.
초등생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은 술에 취한 상태가 참작돼 무기징역에서 징역 12년으로 감형을 받았다. 이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성폭력의 경우 주취 감경을 하지 않도록 변경됐다. 하지만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주취 심신미약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통계출처 : 두잇서베이
심신미약 감형 제도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두잇서베이가 2018년 11월 7일부터 15일까지 전국 14-99세 남녀 39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심신미약 감형(심신미약이 인정되면 감형)의 필요성에 얼마나 공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87%가 공감하지 않는 편으로 나타났다.
답변 중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64.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감형에 대해 91.3%가 "인정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다음으로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 감형이 인정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76.3%였다. 한편, 발달장애 노인성 치매로 인한 심신장애 감형에는 각각 48.7%, 41.8%로 조사됐는데, 비교적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주로 음주,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이 인정된 사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구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국민의 4명 중 3명이 심신미약 감형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뜻밖의 진실…전체 사건 중 0.018%만 심신미약으로 인정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측은 심신미약으로 감형받기 위해 우울증을 주장했다. 그런데 우울증만으로 심신장애를 인정한 사례는 전무했다.
내용출처 :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 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
한국심리학회의 정신장애 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책임능력 판단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2014년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선고된 하급심 판결들 중에서 피고인의 심신장애와 관련된 판례가 총 1,597건이었다.
이들 중 심신상실이 인정된 판례가 4건, 심신미약을 인정된 판례가 301건으로, 총 305건이 심신장애로 인정됐다. 연도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심신장애로 인정된 범죄자의 연령은 특정 연령대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분포돼 있었다. 10대 6명(2%), 20대 57명(19%), 30대 71명(23%), 40대 81명(26%), 50대 62명(20%), 60대 18명(5.9%), 70대 3명(1%)이었으며, 판결문만으로 연령을 추론할 수 없는 경우가 9명(2.9%)이었다.
성별을 살펴보면 남성은 279명(91%), 여성은 26명(9%)으로 여성 정신질환자가 심신장애 판결을 받은 비율이 낮았다.
정신질환 피고인들의 경우 하나의 정신질환보다는 둘 이상의 정신질환으로 진단을 받았다. 기간 중 심신장애로 판결을 받은 305건의 피고인은 법률상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는 경우, 즉 인지적 결함과 관련된 정신질환자가 가장 많았다.
가장 심신장애 판정을 많이 받은 피고인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들은 조현병 131건(전체 심신장애 인정 사건들 중 42.67%), 지적장애 48건(15.64%), 망상장애와 알코올의존증이 각각 22건(7.17%)였다.
의사를 결정할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정동장애(14.66%)가 인정됐다. 기타 정신장애는 단순주취로 인한 심신미약 주장이 6건, 치매가 4건, 마약이 2건이었으며, 심신장애의 종류가 미기재된 경우가 5건이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러 심신장애 판정을 받은 경우는 3년간 약 22건에 불과했다.
알코올 중독증 진단 없이 단순 주취상태였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된 경우가 2014년 3건, 2015년 2건, 2016년에도 1건이었다. 이 사건들은 음주 외에 다른 요인들이 있는 경우다.
기타 범주 중에는 마약 투여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러 심신장애로 판단된 경우가 2건 있었다. 이는 이완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기대했으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다.
소아기호증으로 인해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정신증과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는 판례에 따라 소아기호증과 함께 우울증, 망상장애가 동반된 경우였다.
이처럼 심신미약은 자신이 주장한다고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 판례에 따르면 3년간 법원의 심신장애의 인정 빈도는 매우 저조했다. 대법원 형사사건 접수 건수는 약 160만 건인데 피고인의 심신장애가 논의된 판례는 1,597건에 불과했다.
피고인이 심신장애를 주장해도 법원이 이를 인정한 경우는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305건이다. 즉, 전체 사건의 약 0.018%를 차지하는 301건만 심신미약으로 인정됐다.
심신미약, 우울증만으로 인정될까?
사진출처 : 연합뉴스
피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정신감정을 시행한다. 보통 30일간 정신의학적 검사와 면담, 관찰 등이 진행된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의 경우 뇌파검사와 행동검사, 다면적 인성검사, 간호사 관찰일지 분석 등으로 이뤄졌다. 이후 정신과 의사 7명과 담당 공무원 2명 총 9명이 최종 정신감정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정신질환과 심신장애는 다른 개념
정신질환과 심신장애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심신장애는 의학적 개념이 아닌 법률적 개념이다. 심신장애의 여부는 법률상 책임주의에 의해 범행 당시 이성적 판단과 책임 능력 여부에 따라 판단된다.
자기에게 유리한 행동을 선택할 생각을 하는 인지능력이 있었는가와 당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현재에서 발휘됐는가를 보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이런 인지능력과 행동능력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정신질환이 과거 있었다고 하더라도 범행을 저지를 당시에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법조계와 의료계에선 우울증만으로 심신미약을 인정받는 경우가 희박하다.
제도 개선의 움직임
심신미약 감형 제도는 ‘약자로 보이는 자’가 아닌 실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생겼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이 법안을 없애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리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의 피의자 김성수가 우울증 환자라고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2차적 피해가 발생한다.”라고 말하며 무고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 감형 제도를 폐지하자는 국민들의 주장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에서도 심신미약 감형과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10월 30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심신미약 범죄 형량을 줄이는 현행법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11월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대책 후속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담당 재판부 법관이 피고인의 심신장애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법관의 재량을 제한하고 그 권한을 일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 전문가에게 이향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이른바 ‘김성수법’으로 불리는 심신미약 감형 의무조항 폐지법이 11월 29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현행법에서 음주나 약물에 취한 상태 등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에 형을 ‘감경한다’고 표현한 의무조항을 ‘감경할 수 있다’고 바꾸는 형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재적 의원 250명 중 찬성 248명, 반대 0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심신미약 감형 의무조항을 판사가 재량에 따라 감형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임의조항으로 변경함으로써 일부 범죄자들이 감형을 받기 위해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마찬가지로 형법 제10조에 ‘법원은 심신장애를 인정하기 위하여 감정을 명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추가했다. 이는 법원이 심신장애를 인정해 심신장애를 벌하지 않거나 심신미약자의 형량을 줄이고자 할 때 심신미약 여부를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진정한 ‘약자’를 위해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심신미약 감형 제도.
이 제도가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폐지되지 않으려면 법 취지에 맞게 모호한 부분은 개선하고, 보다 공정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우선, 형법에 나타나는 심신장애의 개념을 명확할 필요가 있다. 심신장애의 정의가 무엇인지,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 중 어떤 것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기술한다면 판정에 대한 객관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심신장애와 관련해 법조계와 정신의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사이에 통일해 두 분야의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전문가의 명확한 감정 결과를 판단 근거로 삼아 판사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반감정 절차와는 별도로 정신감정 절차에 대한 법원의 세부적인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 현행 정신감정은 일반감정 절차를 따르기 때문에 표준화된 정신감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감정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감정인과 감정 절차, 결과의 활용 여부를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신장애로 인한 책임무능력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고인이 질 수 있도록 피고인 스스로가 정신감정에 협조하게끔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이런 점들이 준수된다면 법원의 심신장애 인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와 공감대를 잃지 않을 것이다.
Newsful 김도연 기자